Hey, you

#6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코스 본문

Reflections/Journey: Camino de Santiago

#6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코스

haafter 2021. 5. 26. 03:11
반응형

에스테야 마을을 벗어나니 포도주 샘이 나왔다. 와인공장에서 순례자를 위해 와인을 공짜로 마실 수 있게 해주는데 양이 한정되어 있어 다른 순례자를 배려해 한모금씩만 마셨어야 했는데.. 나는 욕심에 500ml 용기에 가득 채웠다. 다른 사람들도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배려를 실천해야하는 길이었는데..

여하튼 포도주를 마시면서 걸으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반쯤 취해 있는게 덜 힘들다는 건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미친 세상에서 반쯤 미쳐 살다보면 덜 힘들다는 걸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수월하게 이번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여기가 피크인데 벌써 도착했다며 좋아했지만, 곧 펼쳐질 고행을 간과한거였다. 피크 뒤로는 상점이나 음료 자판기, 심지어 나무 그늘도 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끝없이 지루하고 고독한 길이다. 

황량한 길을 계속 걷다가 자두 나무에 자두가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따먹었다. 엄청 달고 신데 아쉬워서 계속 따다가 주머니에 넣으니 30알 정도 되었다.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길을 걷다보면 캠핑카 같은 곳에 (vending car) 음료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악마의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탄산이 너무나도 먹고 싶은 순간 항상 나타난다. 조금만 지나면 도착지일텐데.. 그때는 자제력을 잃고 음료를 마셔댄다. 이러다 한국갈때쯤 오히려 살이 더 찌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음료파는 곳이 나왔지만 가방속 오렌지가 참으라고 용기를 줘서 참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 찾은 그늘 밑에서 먹는 오렌지는 꿀맛이다. 복숭아랑 오렌지를 함께 샀는데 오렌지를 더 힘들때 먹으려고 남겨두다가 내 평생 복숭아보다 오렌지에 더 가치를 두는 일이 있다는 게 너무 웃겨서 피식거렸다. 

순례자의 길이고 순례를 해야하는 성스러운 곳인데 싫은 사람이 있다는게 슬프다. 나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사람을 증오한다. 순례길에 만난 한국인 남자애도(나랑 동갑같은데) 처음 말투가 싸가지 없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끝까지 안좋아질듯하다. 

사람은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 나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살갑지 못한 사람을 보면, 왜저래? 라는 말부터 나오고 그사람의 이미지를 나쁘게 본다. 그런데..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성격일수도 있다. 아니면 원래는 안그러는데 오늘 컨디션, 최근 개인적 상황으로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싫을 수도 있는거다. 나도 원래는 진짜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간혹 피곤하거나, 혹은 요즘.. 상황같은 상황에서는 어울리기 싫은거다. 그래서 벽을 친다. 나도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욕하지말자.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