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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you
봄나들이 본문
긴 겨울이 물러가고 흡사 눈과 닮은 벚꽃 잎이 파르르 흩날리는 어느 일요일 봄날, 아침부터 분주한 엄마의 뒷모습이 안쓰러운 딸은 ‘날도 좋은데 콧바람 좀 쐬러 갈까?’란 경쾌한 봄나들이 제안을 한다. 딸의 갑작스러운 데이트 신청에 한껏 초롱해진 눈빛과 상기된 목소리로 바로 대답하는 정순.
“그래? 엄마 친구들도 불러도 되지? 아빠 아침 좀 차려드리고 나가자”
그녀는 서둘러 상을 차리고 친구 두 명에게 차례로 전화를 건 뒤 나들이 패션으로 갈아 입을 채비를 한다. 500m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형광 주황색 등산용 바람막이를 두르고 통풍이 잘되는 치마바지에 한손에는 보라색 묵주 팔찌, 다른 한손에는 묵주 반지를 차고 나온다. 90년대생의 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60년대생의 “저세상 패션”이다. 화려한 색상만큼이나 정순은 마음이 들떴다.
작년에 딸이 중고로 구입한 12년식 은색 아반떼를 끌고 드라이브를 가기로 한 정순은 앞집 사는 혜순과, 옆 동네 사는 은순을 불렀다. 친구들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중고차라도 있어 드라이브도 하고 기분 좋네’ 라며 콧노래를 부른다. 정순, 혜순, 은순은 모두 61년생 동갑내기로 같은 동네로 이사 온 뒤로부터 친하게 지냈다. 혜순은 정순 못지않게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했고 은순은 커다란 선글라스로 한껏 기분을 냈다.
정순은 딸에게 속삭이듯 귀띔한다.
“은순이 이모 몇주 전에 쌍수했어. 보톡스도 맞아서 아주 탱탱해 얼굴이”
“와 아줌마들도 쌍수해?”
“얘는. 예쁘고 젊고 싶은 건 나이 들어도 다 똑같아!”
차에 하나 둘 몸을 싣고 어디로 갈까 하는 나름의 고민이 무색하게 ‘동네 근처 아라뱃길 한 바퀴 돌고 쑥 많은 곳에서 내려줘. 쑥 좀 뜯어서 들어가게’란 한마디로 바로 여정지가 정해졌다. 인천에 사는 그들에게 오랜만의 콧바람이라 함은 가까운 파주나 양주 등 교외로의 드라이브 혹은 한강, 남산 등 서울 핫플레이스가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오늘 같은 갑작스러운 나들이 플랜에 남편들 밥 차려줘야 하는 스케줄이 변동될 리 없었다. 한두시간 빠르게 놀고 다시 들어가야 점심상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들이 제안자의 아쉬움(어쩌면 그들 중 가장 덜할)을 뒤로하고 그들은 출발했다.
하늘은 가을의 파란 것과는 달리 약간의 황사와 봄 아지랑이가 끼어 살짝 누런 하늘색을 띄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아직은 찬 바람이 머리칼을 시원하게 훑으며 일상의 권태와 근심을 함께 실어가는 듯했다. 서해와 한강을 이어 쭉 늘어진 아라뱃길에는 심은지 별로 안된 어린 벚꽃 나무들이 즐비했고 주말을 맞아 꽃구경을 나온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집에만 있지 말고 같이 나오면 얼마나 좋아”
도통 외출하기 싫어하는 남편을 두고 정순은 한탄하듯 내뱉는다. 혜순과 은순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남편 얘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클래식한 남편 흉도 잠시, 주중에 쉬지도 못한 채 일하느라 고생하는 남편들이 짠해졌나보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서로의 남편들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그녀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일거리 관련 대화가 시작되었다. 벌써 2년째 마스크 공장에서 단순 알바를 해온 은순이 말을 꺼냈다.
“어휴 마스크 공장이 너무 안돼서 나 곧 잘릴 것 같아”
“지금 코로나 끝나지도 않았는데 공장이 문닫게 생겼어?”
항공사 케이터링 업체에서 4년간 용역으로 근무하다 최근 퇴사한 정순이 놀라며 물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근무 조건으로 건강이 나빠져 퇴사하게 됐지만 남편의 정년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그녀이기에 주변 친구들의 구직 현황에 가장 귀 기울이고 있다.
“작년만 해도 마스크가 모자랐잖아. 그래서 대박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마스크 팔아 재끼니까 우리 공장도 수익이 점차 줄어들더니 사장이 앓는 소리를 하네. 나도 곧 나가야 할 것 같아. 진짜 재밌게 일했는데.”
“힘들지 않았어? 일이 그렇게 재밌었어?”
이번엔 기술직의 남편을 둬 몇십 년째 주부로만 지낸 혜순이 물었다. 가정일도 만만찮지만 밖에 나가 일하지 않은 지 꽤나 오래되어 단순 알바라고 해도 막연히 힘들어 보인다.
“응. 너무 재밌어. 나는 일하고 싶어서 일요일 밤만 되면 설레. 다음 날 출근해야 하니까. 단순 막노동이긴 한데 일단 밖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되게 재밌고 감사해. 일이 너무 어렵지도 않고.”
“정말 대단하네. 나도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버틸만 했지 일 자체는 너무 힘들었는데. 기회가 있었다면 몸이 아닌 머리로 일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생각해”
“그러게. 우리 땐 뭐 공부할 기회도 없었으니까. 너는 좋겠다”
요즘엔 누구나 간다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운전 중인 친구 딸에게 은순이 툭 던진다. 가족은 물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분위기가 조성돼 오히려 공부를 안 하면 꾸중 듣기 십상이었던 딸뻘 세대가 새삼 부럽다. 90년대생 정순 딸은 사회나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멋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다.
아라뱃길을 따라 서해안 쪽으로 계속 가다가 정동진의 지리적 반대쪽에 위치한 정서진이 나왔다. 정서진은 아름다운 일몰이 장관이라 날 좋은 저녁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정순, 혜순, 은순은 정서진 가까이 살면서도 한 번도 셋이 함께 노을을 보러 온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음에 꼭 시간을 맞춰 정서진에 오자고 다짐하며 ‘우리네 인생도 정서진 노을처럼 예쁘게 지는지 서로 확인해 주자’는 심심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남편 퇴직하면 캠핑카 사서 전국 여행 다니면서 살고 싶어. 그런데 남편이 운전하기 싫어하네” 동네 뒷동산에 개인 소유 밭을 나름 크게 가꾸며 현재 아파트에 평생 정착할 것처럼 보였던 혜순이 의외의 소망을 웃으며 얘기하자 정순과 은순도 자신들의 은퇴 후 소망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노후엔 여기보다 더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에서 살고 싶어.”
“노후 얼마 안 남았는데 빨리 이사 갈 곳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야. 호호”
“난 지금 사는 곳이 좋아. 그저 애들 다 시집 잘 가고 마음 편히 살았으면.”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돼. 건강 앞에 장사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아니야? 말도 까먹어~ 하하”
차 창밖으로는 벚꽃 잎이 끝없이 휘날리고 있었고, 마치 그녀들의 뜨뜻한 소망처럼 뜨거운 여름의 기운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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