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you

#14 사하군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 본문

Reflections/Journey: Camino de Santiago

#14 사하군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

haafter 2021. 6. 10. 01:26
반응형

여유롭고 한적한 마을 사하군을 떠나 엘 부르고 라네로로 오는 길은 무척이나 단조롭고, 지루했고, 비교적 수월했다. 카미노 일정 중 가장 짧은 길 (18km)이었고, 또 길 전체가 하나의 인도(가로수길)로 이어져 있어 배경도, 길도 4시간 내내 똑같은 양상이었다. 나무가 조금씩 그늘을 만들어주는 고마움을 제외하고는 지루한 path 였지만 왠일인지 희망이 차오르는 길이었고, 행복한 길이었다. Red bull 효과도 있었겠지만 어제 읽은 공지영의 책 글귀를 생각하며 내 스스로 나를 강하게 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두려운 것은 실제의 내 상황도, 다른 사람들의 비난도, 내 미래도 아닌 내가 만들어내는 표상..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들이 만들어냈을 (혹은 내가 만들어냈을) 잣대를 내가 받아들이는 행위에서 나는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 상처와, 아픔과, 슬픔과, 비애는 나의 선택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내 생각을, 상처 낼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잣대를 받아 들이지 말자.

나는 지금껏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을 잘 걷고 있었다. 예를 들어 취업이 늦어진 것도 열심히 하지 않은 내 탓이 크지만 그 역시 졸업은 최대한 늦게 하고 싶어했던 내 신념이 관철 당한 것이고, 그 사이 홍콩도, 유럽도 내 선택에 의해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사실 행복하고, 아직은 준비가 안된 것 뿐인데 왜 다들 이들으 생각이 (혹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내 인생인 것 마냥 피해자인척 하고 있었던 것일까.

공지영에 의하면 (그녀도 인용한 글이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를 상처 입게 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히고 우리 스스로를 피고인석에 앉혀 변명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뾰족한 어떠한 것이 내 두개골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맞다. 나는 항상 자기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누군가 나를 공격할까봐 의기소침해 있었고, 곤두서있었으며, 잔신감,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 내리고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 건가. 이건 내 인생이고, 누구도, 그 아무도 평가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비교하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사는게 가장 멋진 삶이다. 

왜 끌려 다니며 비굴해지고, 무매력적이 되어갔는지 정말 바보 같다.

이런 생각에 휩싸여 더욱 힘차게 발을 움직였다. 그러면서 더욱 희망에, 자신감에, 행복에 휩싸였다. 

정말 오랜만에 내가 왜 죽고 싶었는지, 왜 이렇게 찬란한 내 인생을 두고 죽을 용기를 운운하고 있었는지 한심해졌다. 20대 나에게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기분, 마인드가 한국에 가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일기에도 기록하고 조개 펜던트 같은 걸 사서 두고 두고 기억할 것이다. 

나도 행복하고 싶고, 멋져지고 싶다. 우선 나를 강하게, 나와 화해를, 나로 돌아가자.

오늘의 알베르게는 쾌적하니 머물기 좋은 곳이 맞았다. 여유로운 마을이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기분을 들게 하는 마을인 것 같다. 

생리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다이어트에도 박차를 가해야겠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