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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you
#9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본문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에 의심을 품지 않으면..
꽃이 흐르는 강가에 앉아 모스카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낭만적인 마을 나헤라를 떠나 산토 로밍고로 향할 때 Vicent한테 받은 호의가 너무 고마워 절대 잊지 못하리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나도 그처럼 누군가에게 energetic하고 kind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이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항상 기억하자.
산토 도밍고로 오는 길은 단조롭고 비교적 짧았다. 21km라 5시간 반이 걸린다 했는데 중간에 쉬는 바람에 6시간 정도 지나서 도착했다. 경사가 있었지만 무난했고, 마을도 쉬기에 편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마치 비올 것만 같아서 선선하니 걷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오늘 길에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한국을 돌아가서 나의 행적이었다. 다시 취준을 해야한다는 두려움. 후배들을 어떻게 볼건지.. 스스로 또 부끄러움을 느끼고 좌절할 모습.. 생각만해도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것 같고.. 그래서 한국을 가게 될 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거란 생각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때 나태해하고, 그깟 부끄러움 때문에 숨는 건.. 정말 내 인생에 가장 부끄러운 선택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로 했다. 그러려고 스페인에도 온 것이고, 이 못남을 깨지 못하면 난 평생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같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편해졌다. 절대 잊지 말자. 나의 마음가짐을. 이 길을 통해 귀차니즘, 무기력함, 짜증, 분노, 나태를 버리자고 약속했으니 꼭..
산토 도밍고에 도착할 즈음에 다시 해가 떠서 온 몸이 후끈했다. 시진이와 장을 보러가기로 했지만 귀찮아서 Vending machine에서 밥 해먹을 걸 뽑아 먹었고, 샤워, 빨래를 마치니 저녁 시간이 됐지만 서로 약속한 것도 있고 참다가 결국엔 초콜릿 과자와 맥주를 마시고 말았다. 그 전엔 성당에 다녀왔는데 그냥 사진만 찍고 왔다. 어제 미사 안 간게 후회된다. 꼭 열심히 다녀야지..ㅠ.ㅠ
지금 일기를 쓰는데 아저씨가 아코디언 연주를 하신다. 여유롭고 행복하다. 정말 좋다. 이런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순간을 기억하자. 사랑하자. 사무치게 사랑하자.
내일은 꼭 5:30에 출발하고, 약속한 Kcalories를 넘기지 말고, 내 소신 대로, 내 주장을 잘 펼쳐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하루가 되고 싶다.
가끔 나는 내가 줏대 없고 나의 생각, 개념, 주장이라곤 없는 멍청한 인간 같아 가기혐오에 빠질 때가 있다. 주의하자.
오늘도 시진이가 하자는 대로 휘둘려 계획한 것이 물거품 됐을 때 짜증나는 동시에 이 화는 시진이가 아니라 휘둘리는 내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라 판단이 들고 난 후 진정이 됐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 생각말자. 내 내면을 깊게 바라보고, 내 생각에 귀 기울이자. 휘둘리지 말고, 흔들리지 말자. 인생을 소신있게, 당당하게, 살아가자. 살아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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